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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마을 9월] 복샘 탐구생활 – 서대문 마을공동체지원센터 김복남 센터장(복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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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샘 탐구생활
– 서대문 마을공동체지원센터 김복남 센터장(복샘) 인터뷰

 

마을로청년활동가 박혜린

 

 이번 달 원고 주제는 마을을 바꾼 여성들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처음엔 누구를 인터뷰하면 좋을지 막막했다. 마을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들이기 때문에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정하기가 어렵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선정기준을 만들어볼까도 싶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살고 있는 분들을 어떻게 감히 내가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 궁금한 사람이 누굴까로 질문을 바꿨더니 서대문 마을공동체지원센터 김복남 센터장(이하 복샘)이 일순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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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청년활동가가 되어서 서대문구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일한 지 어언 4개월 여 동안 함께 일하면서 정작 복샘이 어떻게 해서 마을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원고 핑계를 대고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지만(실제로 사무실 자리도 바로 옆자리다!) 마을지원센터 일이란 게 주말도 없이 월화수목금금금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느라 서로 시간을 쪼개서 인터뷰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가까스로 토요일 저녁 9시에 약속을 정해서 동네 카페에서 만나서 두 시간 여 동안 인터뷰를 한 기록을 여기에 옮긴다.

 

실은 인터뷰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서대문의 많은 여성 활동가들 중에 한 명, 그러니까 서대문 마을이라는 숲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나는 큰 산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성의 몸

 

대부분의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단절을 겪는데, 복샘은 특이하게도 아이를 낳고 나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아이를 낳을 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둘째를 임신하고 나서는 아는 사람 소개로 임산부 기체조 센터를 찾았다고 했다. 그곳에서 임신출산 준비를 하고 둘째를 낳은 일이 복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자기 몸에 집중하고 바라보는 반복되는 훈련, 일종의 수련을 하면서 그런 것들이 아이와의 교감도 높이고 마음이나 몸을 평안하게 하니까 정서적으로 되게 많이 안정되는 거야. 어디서도 듣지 못했던 모유수유에 대해서라든지, 아이가 엄마의 힘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그 길을 찾아서 나온다는 그런 탄생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걸 몸으로 그대로 느껴 보니까 그런 자각이 확 밀려 온 거 같아. 이 과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여성의 인생에서 전환점이 될 수 있는지.”

 

복샘이 열렬한 수강생이어서 그랬을까?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곳에서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강사가 되어 임산부들에게 기체조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그 때 집이 되게 멀리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물불을 안 가리고 일을 하겠다고 한 거야. 왜냐면 그 때 나는 이 일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 많은 여성들이 이런 경험을 하고 아이를 낳고 부모 될 준비를 한다면 그 출발부터 큰 차이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야. 굉장히 몸은 피곤하고 힘이 들었지만 일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

 

지금 돌아보면 복샘은 예전부터 몸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고 했다. 민족의학 강의를 듣거나 수족침을 배우러 다니기도 했단다. 그런 기운이 임산부 기체조라는, 몸을 수련하는 일로 자연스럽게 자신을 안내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출산문화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고 알게 되었을 무렵 셋째를 갖게 된 복샘은 자연분만을 선택했다. 약물에 의지하거나 병원의 횡포에 시달리는 대신 자연스런 출산의 의미를 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단다.

 

“그 때 생생한 경험을 한 거야. 몸의 신비로움을 훨씬 더 명료하고 또렷하게 내가 느낀 거지. 여성의 몸 그 자체로 출산을 겪는다는 신비로움이 이런 거구나, 더 편안하다는 느낌을 그 때 받은 거야.”

 

자연출산을 경험하기 전에는 막연히 짐작만 하던 것들을 직접 몸으로 깨닫고 난 뒤로 강의의 깊이도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복샘은 더욱 일에 빠져들게 되었다. 임신과 출산, 요가와 기체조로 경험한 몸의 변화가 생각과 삶을 바꾸고, 그것이 다시 일에 녹아드는 과정을 복샘은 겪어온 것이다.

 

여성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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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장을 맡았던 2002~2004년까지 되게 왕성하게 일을 했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위치가 달라지고 내가 맡은 책임이 달라지면서 더 자발적으로 여러 가지 일을 벌이게 된 거지. 그 때 했던 게 출산문화운동이야.”

 

셋째를 낳고 난 다음해인 2002년, 복샘은 소장을 맡게 되었다. 복샘은 임신부 교육 위주의 소규모 활동방식에서 벗어나 점차 활동범위를 확장해서 산모와 아이가 존중받는 출산문화운동을 펼치기 시작한 시기였다. 복샘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모유수유 심포지엄을 열기도 하고, 엄마들이 밖에서 젖먹이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 캠페인을 했다.

 

“매년 8월 1일부터 7일까지가 세계 모유수유 주간이거든. 모든 매체가 그 때 집중해서 모유수유 보도를 하니까 그 시기에 맞춰서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엄마들이 동시에 젖을 먹이는 퍼포먼스를 기획한 거야. 언제 어디서든 젖을 먹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의도였지. 도시철도공사에 협조를 구해서 삼각산역에서 월드컵경기장역까지 멈추지 않고 그냥 통과하는 열차 한 칸을 빌렸어. 그리고 퍼포먼스에 참여할 엄마들을 선착순으로 모집했는데 50명이 금방 찬 거야. 본인들도 주변 시선이 부끄러워서 젖을 먹이지 못했던 것에 대해 공감하는 인식이 있었던 거야. 엄마들 50명은 앉아서 한꺼번에 젖을 먹이고 임신부 회원들을 피켓을 들고 서서 같이 가고. 아이를 낳았던 회원들도 오고. 지하철 안에 보도진이 더 많았어. 발 디딜 틈도 없이.”

 

그 때 복샘은 모유수유 문화를 바꾸는 캠페인으로 지하철 역사에 모유수유 휴게실 설치, 직장에서 여성들이 젖을 짤 수 있는 공간 마련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시도가 공감대를 얻고 엄마들의 참여를 높이는 것을 보면서 엄마들의 힘, 사람들의 힘을 보았다고 했다.

 

임산부들을 위한 기체조 강사로 시작해서 엄마들과 함께 출산문화를 바꿔나가는 일을 하면서 복샘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고민하게 되었다. 이슈를 만들고 사회적 인식을 환기시키고, 전문의료인들과 산모들을 교육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던 덕분에 분유대신 모유, 제왕절개 대신 자연분만을 선택하는 산모들이 많아졌다.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기 시작하자 산부인과도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복샘이 다시 소장을 맡게 된 2009년에는 이미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이나 요가, 호흡 같은 임산부들의 요구를 반영한 다양한 상품들을 내놓고 있었고, 공적인 영역에서는 보건소가 임산부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해오던 출산문화운동은 시장의 상품으로, 공적 영역으로 흡수가 되면서, 이슈를 이끌어 오던 복샘네 단체의 역할과 방향에 대해 재점검을 할 때가 온 것이다. 게다가 자본의 힘이 출산문화에도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러운 출산은 고통없는 무통분만으로, 출산 후 아이와의 교감은 값비싼 산후조리원 이용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기를 찾아오는 사람은 의식있는 엄마들이 찾아오는 거야. 몸이 무거워도 일주일에 세 번씩 요가를 하고 남편하고 평등한 자연출산을 교육을 듣고, 모유수유 교육을 듣고 여러 가지 교육을 듣고 다 준비를 한단 말이야. 하는데 보내놓으면 그 꼴이 되는 거야. 이게 완전히 판도가 바뀌면서 더 이상 말이 먹히지 않는. 달라지고 있다는 걸 절감을 한 거지.”

 

그 때 복샘은 마을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일상에서의 삶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거대한 자본의 힘에 개인들이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이것이 지역에서 확고하게 엄마들이 구심점이 된 마더센터를 구상하게 된 계기였다. 여성과 엄마가 가진 힘은 이미 느끼고 있었고, 그들이 좀더 자기 중심을 가지고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지지대 역할을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독일의 마더센터를 보면서 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역 안에 부모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잘못된 출산문화를 바꾸는 일을 마을에서 풀고 싶었어. 마을에 있는 선배 엄마들이 얼마든지 도움을 줄 수 있는 거잖아. 선배 엄마들을 강사로 키워서 마을에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거고. 하다못해 산후 우울증을 겪는 산모를 찾아가서 음식이라도 갖다 주고, 말벗이 되어주고,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줄 수도 있는 거고. 수유를 힘들어하는 엄마들에게 노하우를 가르쳐줄 수 있는.”

 

지역이라는 키워드를 찾고 나자 복샘은 바로 2011년에 지역 육아커뮤니티를 만들고, 서대문 지역의 커뮤니티와도 접속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서대문희망네트워크(서희네), 서대문마을네트워크 등을 알게 되었고, 2013년부터는 아예 활동의 근거지를 서대문 마을로 옮겨서 마을 컨설턴트라는 새로운 일에 도전했다.

 

“현장조사를 한다든지 이런 것들은 어찌 보면 마을공동체에 대한 학습이면서 주민들을 만나는 거면서 주민들이 무슨 욕구를 가지고 있는지 파악을 하는 그런 과정이었던 거야. 작년은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각양각색의 너무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 거지. 활동가부터 주민까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나는 주민운동이니 뭐니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마을공동체에 접속이 된 것도 나는 그냥 마더센터를 하고 싶었고. 엄마로서 여성의 주체적인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런 일념으로 마을에 나온 건데, 그게 마을공동체의 또 다른 것들에 대한 고민과 경험으로 된 거지.”

 

마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복샘은 마을넷 운영위원, 마을넷 대표를 거쳐 지금의 서대문 마을공동체지원센터 센터장이 되었다. 복샘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뿌리박고 마을에서 성장한 활동가들에 비해서 본인은 허술한 게 많다며, 하지만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고 함께 하는 일이기에 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면 옆에서 지켜본 복샘은 언제든 마을에서 필요한 일에 손을 보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같다. 그것이 무슨 무슨 대표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든 뒤치다꺼리하는 자질구레한 일이든 일의 경중을 가리지 않고 앞장서서 손을 보탠다. 그렇기에 마을 사람들이 복샘을 믿고 일을 맡기고, 그러면서 복샘은 마을에서 키워낸 리더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서울시-행정 – http://gov.seoul.go.kr/archives/62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