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코리아

지방자치단체

[월간마을 9월] 도심 속 작은 숲에서 만난 9명의 엄마들의 이야기 (자연공부방 박정미 선생님 인터뷰)

월간마을 이미지
 
도심 속 작은 숲에서 만난 9명의 엄마들의 이야기
– 자연공부방 박정미 선생님 인터뷰

 

마을로청년활동가 김진리

 

 

양천구의 작은 도서관 ‘은행정책마당’에서 열리는 자연공부방. 아이만 가르치는 공부방이 아니다. 자기 아이의 선생님이 될 엄마들을 위한 공부방. 공부방을 운영하시는 박정미 선생님께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번 주 수업은 공원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침 일찍 공원으로 출발했다.

 

늦더위가 한창인 8월, 비도 오려는지 후텁지근한 공기에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선생님은 “우리 더우니까 그늘로 가요” 하시더니 사람들을 이끌고 공원 속 숲으로 들어갔다. 신기하게도 몇 미터쯤 자리를 옮겼을 뿐인데 시원한 공기가 느껴졌다. “한발자국 차이인데 굉장히 상쾌하죠? 이게 바로 숲이 주는 선물이에요.” 하고 말씀하시는 선생님.

 1 2

곧 수업이 시작되었다. 숲을 천천히 걸으며 눈에 밟히는 식물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꽃과 잎맥, 이파리, 나무껍질의 모양 하나하나 설명하는 목소리에 애정과 정성이 묻어난다. 그냥 단순한 설명이 아니었다. 말끝에는 언제나, 아이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더 재미있어하고 기억에 남을 거라는 조언. 그리고 그녀는 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하나 들더니.

 

“이파리 끝이 펜촉처럼 생겨서 핀참나무라고도 해요. 가지에 달려있는 도토리들이 참 앙증맞죠? 지천에 떨어져있었는데 왜 그 동안 보지 못했을까요? 아는 만큼 보이는 거에요. 알고 나니 무심코 지나칠 수 없게 되죠? 이렇게 모든 것이 알고 보면 가치 있고 소중해요. 우리 아이들한테도 말해주세요. 사람들이 아직 못 알아본 너는 정말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이 이야기를 듣고 나를 포함한 8명의 엄마들은 손에 쥔 작은 도토리 하나를 다시 땅에 떨구지 못하고 소중히 가방과 주머니 속에 담았다. 자연으로 나온 엄마들의 눈이 보석처럼 빛나고, 냄새 맡고 만져보며 아이처럼 신기해하는 모습, 아카시아 나무를 보며 아스라이 어린 시절 추억의 보따리를 풀어내기도 하고, 방금 들은 나무와 꽃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 계속해서 뇌이고 아이에게 가르쳐줘야지 하며 수런거리는 엄마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3 4

 

한 시간여 공원을 돌며 수업을 진행하고, 정자에 모두 둘러앉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박정미 선생님께 물었다. 이 공부방,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걸까.

젊은 시절, 연습도 없이 키우게 된 아이들. 잘 키우고 있는 걸까 항상 궁금했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과 정보를 공유하거나 함께 보육스터디 모임을 만들고 싶어도 그 시절엔 의식이 약해 다른 엄마들을 설득하기도 더 어려웠다고. 그러다 아이 둘이 대학에 갈만큼의 나이가 되니 이제서야 아이들은 이렇게 키우면 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교육계에서 15년 이상 일하며 아이와 또 그 엄마들을 수없이 많이 만나본 그녀는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실수하는 엄마들을 보았다. 그런데 그 실수가 그녀가 아이를 키울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누구든 실수는 하죠. 하지만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내가 그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특히나 자연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었다. 지천에 깔려있지만 자세히 보지 못해 깨닫지 못하는, 그 자연의 신비에 경이로워 하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녀는 자연은 그 어떤 값진 것으로 살 수 없는 귀한 체험을 준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흥미로워하는 자연이라는 언어로 엄마가 아이의 선생님이 된다면 어떨까.

 

“아이를 훈육할 때 아이들은 보통 엄마의 가르침을 잔소리로 여기죠. 그런데 자연을 인용하면 어떨까요?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님은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냈는데 항상 조선사람이라고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했어요. 그래서 항상 울면서 집에 돌아오니 그 어머니가 민들레를 보여주며 말했대요. 밟아도 일어나고 또 밟아도 일어나는 민들레처럼 너도 언제나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현명하죠. 이렇게 우리도 자연을 통해 아이의 시각에서 함께 이야기 하고 가르침을 주는 엄마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한참 경청하다가 들고 있던 녹음기를 옆에 앉은 엄마들에게 넘긴다. 모두 부담스러워하며 녹음기 받기를 꺼려했다. ‘아 인터뷰에 난관이 봉착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

“엄마들도 익숙해져야 돼요.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발표 피하는 모습 보면 정말 열 받죠~ 또 서로 다른 시각의 생각을 함께 나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지금까지 수업에서 느낀 여러분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요.”

5 6

선생님의 한마디에 옆에 있던 한 엄마가 녹음기를 받아 들더니 아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이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부끄러워하고 부담스러워하던 엄마들이 목청을 높였다.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아이, 사춘기에 들어서며 쌓은 마음의 벽, 단절된 소통 그리고 호기심이 많아 질문을 많이 하지만 아는 것이 없어 답하지 못하고 책만 읽게 했다는 엄마,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 때문에 체력이 부치는 엄마와 엄마의 스트레스가 그대로 전이되어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생긴 아이. ‘내가 둔해서 아이의 고독을 몰랐다’며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에 마음이 아릿하다. 하지만 엄마들은 이 풀 수 없는 문제들의 답을 자연공부방에서 찾았고, 아이에게 칭찬받는 엄마가 될 수 있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야기들 속엔 공통된 단어가 있었다. “엄마의 힐링” 이라는 단어. 육아와 가사에 지친 엄마의 마음 속에 쌓인 화는 아이 마음 깊숙이 비수로 꽂힌다. 아이를 가르치고 치유하는 것 이전에 엄마들이 먼저 치유 받아야 했다.

 

“스트레스상태에서 아이를 보게 되면 내 안의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다 발사돼요. 그래서 아이가 학교나 유치원에서 돌아올 때 엄마가 절대 스트레스 받아있으면 안돼요. 우리도 그거 다 받고 컸는데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러면 안되겠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건 바로 엄마예요.”

 

모임에 나와 꺼내놓는 엄마들의 고민은 이 집이나 저 집이나 같았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엄마들을 보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엄마들에게 나 혼자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안도와 편안함을 줄 수 있었다.

 

“요즘에 만연한 게 뭐예요? 술 한잔 하자 라는 말이잖아요. 술 마실 때만 잠깐 잊을 수 있는 그런 것 말고요. 자연은 그 자체로도 치유능력이 있어요. 함께 이 속에서 좀더 건강하게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퍼뜨리자고요~”

 

공부방을 거쳐간 엄마들은 단지 치유와 아이 보육에만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수업을 듣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각자가 큰 파장이 되어 또 다른 모임을 만들며 긍정적인 기운을 전하고 개인의 성취도 이루고 있다. 독서모임을 만들기도 하고, 한번 수업을 듣고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자연에 관한 세 번의 연강을 한 엄마도 있다고.

 

“엄마들의 잠재력이 대단한데, 육아와 가사로 그 능력을 발산하지 못한 채 정체성 혼란을 겪어요. 그러면서 인생의 가치도 잊고 육아가 즐거운 것이 아닌 스트레스의 대상이 되어버리죠. 이젠 엄마들의 능력이 저를 능가할 정도예요. 여기서 아이디어와 힌트를 얻어서 새롭고 독창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요. 경찰엄마가 있으면 과학수사에 관한 직업탐색 프로그램, 문화 쪽의 엄마가 있으면 세계의상 체험, 기질선생님이 계셔서 기질을 통해 소통과 치유하는 프로그램으로 확장되기도 하고. 이걸 통해서 엄마들의 경력단절로 낮아진 자존감도 회복되는 모습을 많이 봐요.”

 

한 차례 왔다 간 소나기. 다들 우산도 없지만 불평한마디 하지 않고 ‘비 맞으면서 가지 뭐’ 하며명랑하게 이야기한다. 내린 비가 공원 여기저기 뺴곡하게 자라난 진보라빛의 맥문동꽃의 색깔을 더 고와 보이게 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박정미 선생님의 비전에 대해 물었다.

 

“처음에는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하고, 나 사는 동네만 한번 바꿔보자는 취지였어요. 지금은 아주 작은 움직임일 뿐이지만 이렇게 계속 긍정적인 것이 퍼지기 시작해 시너지가 일어나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횡행하는 한국인의 고독함과 외로움. 금이야 옥이야 기르지만 아이를 자신의 장식품처럼 생각하는 부모들은 그릇된 교육방법의 덫에 빠져 아이의 공부를 수단이 아니라 목표로 만들어버렸다. 우리가 규격화 시킨, 상처받은 아이들을 돈과 성공이라는 그늘 아래 안달하는 사회로부터 구해내고 싶다.

 

“요즘, 윤일병 사건 같은 온갖 충격적인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죠. 저는 우리나라 교육제도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측했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줘야 해요. 진정한 목표, 그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결국 이것도 저를 위한 거예요. 진정한 행복은 뭐예요?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작은 재능이지만 함께 나누며 그걸로 서로의 마음을 살려주기. 저는 신나게 사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많아지길 바라요. 그럼 저는 저절로 행복해 지는 거예요. 여기 있는 엄마들처럼. 벌써 작품이 나왔잖아. 이렇게~”

7 8

 

마지막 한마디에 다같이 호탕하게 웃곤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어느덧 점심시간, 정자 위에서 열린 포트럭 파티. 집에서 해온 팥밥과 나물, 노란 계란말이, 먹기 좋게 잘라온 수박이 정겹다. 시간이 없어 사진만 찍고 가야겠다고 인사를 하니 한 수저라도 더 먹고 가라시면서 김쌈을 입에 넣어주신다. 김에 싼 밥 한 숟가락에서 느낀 그 온도에 새삼스레 마음이 뭉클하다.

 

우린 태어난 자연 안에서 서로 또 함께 시너지 낼 수 있는 생태계를 이루어 살아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살고 있다. 이 순리를 따르는 훌륭한 엄마가 지은 둥지 안에서 부화해 날갯짓할 아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지. 그 아이는 오늘 수업에서 배운, 절개를 상징하는 곧은 잣나무처럼 어떠한 고초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하고 바른 아이로 자라날 것이다.

출처: 서울시-행정 – http://gov.seoul.go.kr/archives/62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