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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마을 12월] 마을에서 마을을 보다

월간마을
 
마을에서 마을을 보다

 

마을로청년활동가 가리

 

이게 마을공동체였어?

 

 2014년, 나는 은평에서 마을로 청년활동가로 일했다. 아직 2014년이 한 달여 남았지만, 이 건조한 문장 안에 담겨 있는 무거웠던 시간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보게 되는 시기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쉽지 않았다. ‘마을공동체’라는 단어에 대해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한 채 지원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 단어에 묵직한 의미들과 나이브한 바람들을 끌어 담고 그 무게에 낑낑거렸나보다. 상대를 좋아한다면서 실은 상대를 좋아하는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서투른 연애처럼, 난 내 막연한 생각과는 다른 모습인 마을공동체에 대해 까닭모를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상처받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얘기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최근 은평에서 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한편으론 비슷한 맥락으로 열리고 있는 토론회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2004년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은평의 마을공동체 활동이 어느덧 10년여를 맞은 세밑, 정신없이 ‘마을공동체 활동’과 ‘눈앞에 닥친 일들’을 생각하며 달려온 사람들이, 자신들이 겪어온 마을과 앞으로 함께할 마을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들이 계속되고 있다. 마을기업을 하는 사람들이 정책과 수치로 표현되지 않는 자신들의 삶과 일에 대해 얘기하는 토론회도 있었고, 은평지역사회네트워크의 이름으로 느슨하게 모인 단체와 모임의 사람들이 은평 마을공동체의 역사를 짚어보며 그 안의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모습에 대해 그려보는 토론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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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그 중 가장 먼저 열렸던, ‘마을에서 마을을 보다-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이란 이름의 토론회에 대한 기록이자 소회이다. 작공이란 청소년 공간과 마을엔카페라는 마을 거점을 기반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1세대 활동가이자 토론회의 사회를 맡은 이미경은 토론회를 시작하는 말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제가 하고 있는 마을공동체에 대해 ‘공동체’를 내세우며 이야기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우리가 마을공동체의 우수사례로서 상도 받고, 한편으로는 이게 마을공동체였어?라는 비난도 받으면서, 스스로도 ‘과연 마을공동체란 무엇일까? 이 지점에서 마을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가까운 분들을 모시고 이런 지점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 내가 하고 있는 활동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 거기까지만 생각했습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 다소 나른한 기분으로 별 기대없이 찾아간, 조금은 급하게 준비된 그 토론회에서 나는 조금 미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어.

 

 간단한 참가자들의 자기소개 후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한 것은 최순옥이었다. 그녀가 맡고 있는 이런저런 직함들로는 설명되지 않을, 은평의 마을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이다.

 그녀는 먼저 마을공동체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랫동안 풀뿌리 활동가로서 활동할 때 쉽지 않았던 부분들, 정보나 활동에 대한 접근성이나 활동을 쉽게 만드는 프로세스의 확립 같은 긍정적인 측면들에 대한 이야기는 곧 어떤 한계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마을공동체라고 하는 게 우리사회가 만들어 가야할 하나의 작은 모델이 아니냐 하는 것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게 공론의 장으로 올라가서 개인들의 살아온 삶과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해 공유해보면서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모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라는 식으로 흐름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을 성과를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2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이제와 이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여전히 우리에겐 부족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고병헌의 지난 강의에서 ’그것은 오류가 아니고 우리의 한계였다‘ 라는 말에 굉장한 위안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죠. 그랬기에 준비가 되어있던 것도, 무언가를 준비해서 하려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인력의 한계, 부족한 역량 같은 여러 가지의 문제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이후 보완되고 필요하다 생각되는 어떤 대안점의 제시로 옮겨갔다. 지역의 비주류와 1%의 활동이 아닌, 더 확산되고 넓어지는 활동, 그것을 위해 담보되어야할 활동가의 재생산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 민관협력을 위한 기관의 마련, 맞춤형 마을 정책 같은 것들. 그러나 내가 조금 더 집중한 것은 어떤 성찰의 부분들이었다.

 

 “내부에서의 논의와 공유 같은 것들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하여 마을 공동체와 마을 생태계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보니 당면한 일들을 수행하느라 바빠 ‘은평구는 어떤 마을을 만들고 싶은 거야?’ 라고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게 된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의식과 성찰이 있기에 그녀가 이후로 제시한 문제의식들, 활동가들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생계문제와 동별 모델의 확립, 단순한 토론회가 아니라 고민을 교류할 수 있는 풀뿌리 활동가 대회 같은 것들이 조금 더 피상적이지 않은, 조금이나마 가까운 것으로 다가왔다.

 

 

너무 어려워요라는 이야기, 이런 자리에서나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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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이야기를 이어받은 건 초록길 도서관이라는 마을 거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지연이었다.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열망과 그것을 통해 느낀 경험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녀의 말은 자연스레 활동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어려움들로 이어졌다. 마을을 “거절할 수 없는 관계가 늘어나는 것”으로 정의한 그녀의 고민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첫째, 정주하지 못하는, 보통 2년 단위로 거주지를 옮겨야하는 서울 사람들과 마을 활동을 어떻게 해나갈지에 대한 문제. 둘째,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마을공동체가 지속가능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 셋째,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미묘한 문제를 안고 있는 행정과 민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 하나같이 마을공동체 활동과 정책이 간과하기 쉬운 문제들이고, 하나하나 심도 깊게 오랫동안 얘기해 볼만한 주제들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대한 얘기를 하며 그녀는 이런 얘기를 꺼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서관에 탐방을 오시면 너무 어려워요.” 라는 이야기를 하기 힘듭니다. 이런 자리에서나 할 수 있죠. 알게 모르게 조금 부풀려서 자랑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탐방 온 분들이 다들 부러워하면서 나가는 뒷모습을 보다보면 뿌듯하다가도, ‘그래서 나는 뭔가…’ ‘이건 그냥 껍데기인데’ ‘이런 식이면 앞으로 힘들 텐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면서 우리는 힘든 것들을 해결하기보다, 포장하게 되어요. 그래야 사업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정리해버리고 홍보합니다. 도서관이 겉으로 커진 모습이지만 아직까지 운영체계와 재정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했습니다.”

 

 다소 민감할 수도 있지만, 포장하지 않는 것,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그것이 가능한 판을 만드는 것, 이게 마을공동체가 걸어온 길을 짚어보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그려볼 수 있는 단서들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뭘 하려 하지? 뭘 믿기에 이런 것을 하려고 하지?

 

 다음으로 말을 이은 것은 여성주의를 기반으로 의료와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살림의료사협의 민앵이었다. 어렸을 적 겪은 마을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그녀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어떤 마을을 만들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살림의료사협의 정관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간 것입니다. 정관 전문은 여성주의자 몇 명이 독자적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뭘 하려 하는가 라는 질문에 기도하고 답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에서 끌어올리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뭘 하려 하지? 뭘 믿기에 이런 것을 하려고 하지?’라는 마음말이죠.”

 

 그녀는 그것이 “정당한 약자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실현됨을 믿는다. 안전하게 아이를 키우며 노후를 맞아할 수 있는 시설과 환경을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이라 얘기했다. “거창한 꿈에 비해 아직 첫 출발일 뿐”이라는 덧붙이면서. 이것 역시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나의 단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해두는 것. 현실은 포장하지 않더라도, 왜 그 현실을 감수하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그 시작점부터 이야기해보는 것. 서로의 꿈에 대해 어떤 판단도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판.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토론회에 대해서 발견한 가능성들 중 하나.

 

 

마을공동체란 단어가 떨려야하는데 안 떨리잖아요?

 

 다음으로 말을 이은 고병헌 교수는 여러 의미 있는 지점들을 짚었다. 활동의 한 가운데에 있진 않기에 객관적이고, 어떻게 보면 도발적일 수도 있는 그의 말 중 먼저 마음에 들어온 건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공동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한국에는 일종의 ‘오염’된 단어가 있는데 마을공동체가 그러한 단어 같습니다. 마을공동체란 단어가 떨려야하는데 안 떨리잖아요?

 

 그는 이런 맥락에서 마을을 돌아볼 때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자세를 주문했다. 내겐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처럼 여겨졌다. 이후의 마을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 웹툰이나 홍보 영상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마을공동체의 이야기를 알리자는 그의 제안에서도 필요한 부분이고, 전반적인 마을공동체의 나아갈 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고. 그는 또 ‘우리마을 선언서’를 통해 은평이 어떤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표명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덧붙였다. 그가 한 말 중 “관용에서 인정으로 가야한다. 관용은 강자의 단어니까”라는 말과 함께, 생각해봐야할 부분을 던지는 부분이었다. 그 얘기는 이후에 이어진 말들을 통해 더 분명해졌다.

 

 

공동체의 촉수가 밖으로 나아갔으면

 

 다음으로 대화를 이끌어간 것은 은평시민신문을 통해 지역언론을 10년간 운영해온 박은미였다. 그녀는 활동을 하면서 희생하게 되는 여성의 삶에 대한 지적과 함께 다음과 같은 문제를 던졌다.

 

 “또 하나는 공동체를 강조할수록 그 외의 사람들은 더욱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감당하기는 큰 문제이지만 긴장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활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는 스킨십도 외부의 시선에는 ‘저들은 벌써 저런 사이구나’ 라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을공동체라는 이름에서 너무나 간과하기 쉬운 문제. ‘마을’과 ‘공동체’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함께함’과 ‘어울림’ 때문에 가려지는 것들. 실상 어떤 식으로든 활동을 하고 삶을 살아오다보면 어떤 그룹만의 문화가 생기고, 아직 그곳에 발을 담그지 못한 사람에겐 그것이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은 비단 마을공동체 뿐 아니라 어떤 모임이나 단체도 안고 있을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마을공동체에선 더더욱 그런 문제를 보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소외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는 사람은 사실 지역에서 소수라는 것, 서로 다른 양상의 문제이지만 같은 지점에서 출발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실상 그것은 내가 마을공동체라는 곳에 들어와 늘상 겪던 문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분명 누군가는 감동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며 활동하고 있는데, 난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예상치 못하게 어느새 소수자가 되어 변두리를 맴돌고만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 과연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할까. 박은미의 말에 최순옥이 공감하며 공동체의 촉수가 밖으로 나아갔으면하고 바라보지만,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많은 시간을 나누며 힘든 시간을 공유하는 것, 우리의 삶을 보는 경험

 

 몇 시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간 시간이었다. 여기에 채 기록하지 못한 내밀한 삶의 이야기들, 그리고 마을공동체 활동에 있어 주류이나 어떤 부분에선 소외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의식적으로 배제하지만 의식하게 되는 나이와 호칭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아쉽게도 난 이 자리에서 던져진 이야기들에 대해 아직 어떤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은 앞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찾아가야 될 문제들이니까. 중요한 건 그것들을 함께 해결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한 것은 어떤 불편한 지점에서부터라고 믿는다.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면 즐겁고 재미있다고, 함께 하는 삶은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것은 쉽다. 물론 실제로 그렇다. 하지만 그런 밝음의 이면엔 그만큼이나 분명한 무게감의 고통과 번민이 있다. 그것들을 놓쳐선 안 된다. 지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이 있음에도 일관되게 밝음과 건강함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한 지금까지의 궤적과 현실을 짚어보지 않고 어디있는지도 모를 미래상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게 불편한 기만으로만 여겨진다.

 내가 지금까지의 짧은 마을활동의 경험에서 딱딱한 토론회 자리를 제일 좋았던 경험으로 꼽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동안 얼굴도 알고, 함께 행사에 참여하고,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지만 한편으론 피상적으로, 머리로만 알던 활동과 활동가들이, 조금이나마 내게 의미있고 가깝게 느껴지게 하는 경험이었으니까. 저 사람도 저런 고민을 안고 있었구나, 하는. 다시 함께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앞으로의 마을공동체에 있어 필요한 것이야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 중 반드시 빠지지 말아야할 것이 바로 이런 대화의 자리라고 생각한다. 조금 의식적으로 준비하더라도, 쉽게 판에 끼어들지 못하는 사람도 함께할 수 있고, 어떤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수용하며, 앞으로 함께 마을을 만들어가는 것에 반영될 수 있는 그런 판.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에 비해 굉장히 지쳤음에도, 여전히 마을에 대한 희망을 진심에서 이야기해볼 수 있고, 아직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많은 시간을 나누면서 힘든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보는 경험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토론을 마치며 사회를 맡은 이미경은 이런 말을 했다. 이번을 시작으로 어떤 이름으로든 수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며 서로를, 그리고 함께 만들어오고 만들어갈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들이 마을 안에서 더 많아지길, 그 과정에서 마을이 더 많은 결을 품고 탄탄해지길 바라본다.

 

 

 

출처: 서울시-행정 – http://gov.seoul.go.kr/archives/66460